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흐린 날/황인숙

빈지게 1915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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흐린 날/황인숙


내게 양팔을
쭉 뻗고 누울 만큼만
풀밭이 있었으면
좋겠다
근처의 나무들은 서늘히
촉촉한 향내 풍기고
하늘의 구름들
눈물처럼 웃음처럼
멀고 또 가깝고

지난날 담배를 나눠 피운 친구여
지금 내 곁에 오시게나
우리들 나직이 엎드려
가득한 바람으로 일렁이지
우리 작은 풀밭은 고원처럼
거리의 불빛 위로 솟아오르리라

(내게 시간을 내준 것이
너를 크게 위로할 날 있으리니)
내가 양팔을
쭉 뻗고 누울 만큼의 풀밭이 된다면
흐린 날 나는
나무들의 촉촉한 수액으로
뿜어져나가리라
하늘에는 한두 송이 구름
이끼처럼 살갗에 퍼져나가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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